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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기억된 현재

정보사회와 교회

by 깊은샘물지기 2026. 2. 6.

(* 1995년 진급을 위한 논문을 발견하다.)

 

1. 들어가는 글

 

우리는 지금 거대한 세계사적 전환을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엄청난 격랑 속에 떠밀려 가고 있다. 한 세기가 끝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1천년기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올 제삼천년기를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자신에게 항상 되물어 보아야 할 질문이면서도, 우리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당시 유대에서 최고의 권력과 지위를 누리던 빌라도에게 진리를 설파하며 감동시켰더라면 아마도 십자가 처형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의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았을까?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인류가 지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고 거기에 대한 대답도 영원히 새롭게 반복되어야 한다는 뜻일까? 아무리 올바른 대답을 해도 로마의 권력을 대표하는 총독이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침묵했을까? 예수님의 침묵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실, 진리는 인간이 그 궁극적인 실체를 완전히 파악할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라도 언제나 변함이 없고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런가 하는 문제는 둘째 문제이고, 진리가 인간사회와 관련을 맺을 때 가지는 측면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던진 질문은 그 당시 역사적인 상황 안에서 예수님이 외치는 진리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었다고 본다. 그런 질문에는 대답이 여러가지 나올 수 있고 듣는 사람에 따라서 자기 구미에 맞지 않는 대답을 배척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굳이 빌라도의 구미에 맞는 현실적인 대답을 해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빌라도의 질문에 침묵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20세기말을 살아가는 목회자로서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2. 현대사회의 이해

 

21세기를 4년 앞둔 현대 사회를 ‘후기산업사회’, ‘탈산업사회’, ‘정보화사회’, ‘과학기술혁명의 사회’, ‘하이테크사회’, ‘컴퓨터 사회’, ‘제3의 물결’ 등으로 부르고 있다. 사람들이 현대 사회를 어떠한 이름으로 부르건간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과학기술의 변화와 상호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 변화의 밑바탕에는 컴퓨터가 자리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어떠한 분야라도 컴퓨터의 직간접적인 도움없이는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의 견해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변화될 정치·경제·사회·문화는 어떤 형태로든 컴퓨터의 변화와 맞물려 진행될 것이다. 컴퓨터에 의해 제공되어지는 문화는 현재의 문화이면서, 미래의 문화이다. 3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신세대’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컴퓨터 학습 붐이 일어나고 있고, ‘컴맹’(Com 盲)이나 ‘넷맹’(Net 盲)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다. 대학생 층에서는 이제 컴퓨터와 별 관련이 없는 전공을 하는 이조차 컴퓨터가 없으면 시대적 조류에 뒤떨어짐을 느낀다. 일찌기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에서 곧 컴퓨터에 의거한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리라고 예견한 바 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들은 급변하는 시대의 추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변화의 양상과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 채 컴퓨터사회라는 말만 무성하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는 컴퓨터사회의 도래에 즈음하여 좀더 냉철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컴퓨터의 핵심은 과학기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가 문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문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자크 엘룰(1990)은 과학기술문화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려놓고 있다. 과학기술문화의 불가능성은 다음과 같은 세측면에서 발견되다는 것이다. 첫째, 과학기술은 지식의 축적을 허용하지 않으며, 새로운 지식에 의한 지식의 무효화를 토대로 발전해 나간다. 하나의 분야에서 새로운 과학기술은 이전의 과학기술을 폐기처분하게 만든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더 많은 지식이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다. 그 결과로 “과학지식은 문화를 낳을 수 없다”고 단정한다. 둘째로는 과학기술을 이용한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인데, 과학기술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문화의 생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과학기술 언어의 전문화(專門化)에 의해서 서로 다른 과학기술은 격리되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한 분야에서 연구한 내용들을 담기 위해서 정리되는 학술언어들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넷트 워크는 과학기술이 이루는 세계의 매우 두드러진 면모인데, 그것은 역설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만인을 만인에게 연결시킴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모두에게 제공하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보편화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람들 사이를 떼어놓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상호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네트 워크는 결국 물리적 연결의 총체화를 이룸에도 불구하고, 상호작용이 없는 개인들의 모임이다. 이런 상황은 문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룰은 과학기술과 문화는 극단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이둘 사이를 이을 교량은 없으며, 이 둘을 연관시키려는 것은 지각없는 일이라고 했다.

 

만약 과학기술이 문화와 전혀 연관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들은 종교인으로서 과학기술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필요에 따라 과학기술을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과학기술은 문화와 상호작용을 하며, 오히려 문화를 가능케 하는 핵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과학기술과 함께 사람은 자연의 순환으로부터 독립하여 문화를 창조한다. 사람의 손이 가해진 것, 인공적인 것, 그것이 문화이며 곧 기술이다. 거꾸로 말하면 기술은 아트(art)요, 아티피셜(artificial)한 것이며, 그 자체가 문화인 것이다. 그런 뜻에서 문화란 언제나 기술문화인 셈이다. 우리는 과학기술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과학기술문화란 함은 그 문화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과학기술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일상생활의 모든 분야에까지 깊숙히 침투하여 상당히 일반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정신적인 영향력에서 보편적인 문화현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현대의 과학기술의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는 컴퓨터이다. 이러한 점에서 컴퓨터가 일으키고 있는 문화적인 현상과 영향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컴퓨터가 종교적인 고찰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문화현상으로서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란 언제나 그 시대의 문화의 틀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고, 신앙을 전달하게 될 때는 그 시대의 상징체계, 곧 그 시대의 문화언어를 가지고 초월성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신앙은 언제나 문화적인 모습을 띠게 마련이며, 오늘날 컴퓨터 문제를 고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상징물로서의 컴퓨터를 생각하기 이전에 산업시대의 상징물로서의 시계를 생각해보자. 루이스 멈포드가 말했듯이 ‘시계는 산업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계이다. 시계란 대부분의 인간 경험에는 낯선 기계적 시간체계이다. 1세기 전까지만해도 사람들은 추상적으로 분절된 시계의 움직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고투의 긴급성에 따라 시간을 측정하였다. 생활의 리듬은 일일 주기 - 새벽의 수탉 울음소리로 시작되고 밤에 닭이 잠들면 마감된다 - 속에서 이루어지는 동물사육, 파종, 수확 등의 작업과 계절의 연주기(yearly cycle)에 따라 형성된다. 그러나 시간이 기계적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이 변화되었다. 발전의 매 단계마다 시계는 두드러진 현시적 존재였고, 기계의 전형적인 상징이었다. 오늘날에도 시계보다 널리퍼져있는 기계는 없다. 사람들이 시계에 따라 먹고 자고 일하므로 시계는 ’정의적 기술‘이라 불려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시계는 삶을 규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되었고, 정확성의 상징이 되었으며,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이 미덕이 되었다. 시계와 서구의 세계관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글들이 쓰여졌다. 하나님조차도 질서정연하고 잘 조정된 우주를 만든 신성한 시계 제작자로 간주되었다. 컴퓨터는 정보화 사회의 상징이다. 미래 학자 데이비드 볼터는 컴퓨터가 논리, 시간, 공간, 그리고 언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주된 기술적 은유이다. 컴퓨터는 이전 시대의 기계가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인간 지성의 다재다능함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일으키고 있는 문화의 핵심은 컴퓨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생산과정을 형성하는 정신, 생산품을 이용하는 정신, 곧 영성에 있다.

 

 

3. 현대 사회의 순기능과 역기능

 

한국은 1994년을 기점으로 정보사회에 진입하였다고 한다. 정보사회는 정보 산업 관련 종사자의 숫자가 기타 부문의 종사자의 수를 능가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국은 정보화 초기 단계에 있는 셈이다. 최근 5년 동안 사무 자동화 부문, 제조 분야, 멀티 미디어 분야, 정보 통신 분야의 기술 발전과 축적, 보급 속도는 우리 국민들도 향후 5년 이내에 본격적인 정보 사회에 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정보화는 그 동안 서서히 가정, 학교와 직장 그리고 시장에서 우리의 생활양식을 변모시켜왔고, 마침내 사고 방식과 종교에도 영향을 미쳐왔다.

 

좁은 의미의 정보사회는 컴퓨터와 통신이 결합되어 정보의 축적, 처리, 전달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면서 정보의 가치가 산업사회에서 물질이나 에너지 못지않게 중요해지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서 정보와 지식이 중요한 재화가 되고, 정보 통신 기술이 가정, 기업활동, 행정 등 인간의 여러 활동 분야에 도입되어 사회 환경, 생활과 인간 의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혁명적인 변화가 사회를 컴퓨토피아(computopia)로 만들 것인지, 컴퓨포비아(compupobia)로 만들 것인지는 진지하게 질문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질문은 아직 단정적으로 대답을 내릴 수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제도나 기술이 순기능과 역기능의 양 측면을 다 가지고 있으며, 순기능으로 보였던 측면이 쉽게 역기능으로 바뀌어 온 것을 역사를 통해서 체득하여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앞으로 컴퓨터가 지배하는 정보사회가 진행된다면 구조적 속성상 역기능의 측면이 더 커질지 모른다는 비판적인 예측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들이다. 그러면 먼저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정보 사회의 순기능과 역기능 그리고 교회에 미치는 영향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3.1 순기능

① 정보사회는 개인이 존중되고 이성적인 행동이 지배하며, 물질의 풍요보다 마음의 풍요함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중요해진다. 또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온 생활 방식인 공동체생활이나 직접 부딪치는 생활에서 벗어나 네트워크를 통해 광범위한 집단과 교우하면서 보다 자유롭게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② 생활이 편리해진다. ③ 정보화는 각종 뉴미디어를 대량으로 개발하며 창출하기 때문에 정보의 유통이 빨라진다.(쌍방향 TV, 비디오텍스, 전자 신문, 전자 우편, 화상 전화, 고도 정보 통신 시스템 등등) ④ 정보화의 진전은 대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를 강화시킨다. ⑤ 지역간 정보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 ⑥ 힘든 노동으로부터 부분적으로 해방시켜 줄 것이다. ⑦ 여성의 역할에 변화를 가져오고 남녀 평등에 기여할 것이다.

 

3.2 역기능

① 사생활 침해와 개인 정보의 유출 가능성이 커져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많아진다. ② 인간이 개인화, 고립화되는 문제이다. ③ 정보 부유층과 정보 빈곤층으로 사회와 국가가 분열되어 불평등 문제가 발생한다. ④ 노동 시간이 늘어난다.(재택 근무) ⑤ 정보를 통제당할 위험이 있다. ⑥ 컴퓨터 사용으로 신체적 영향이 포함된다. ⑦ 뉴스 전달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절박한 상황의 조건을 뒤바꿔 놓을 수 있다.(페르시아만 전쟁-깨끗한 전쟁?) ⑧ 정보고속도로가 완료되면 이를 통한 문화제국주의의 위험을 안고 있다. ⑨ 압도적인 기술 우위는 현재와 같은 기술 제국주의을 더 넓고 뿌리깊게 확산시킨다. ⑩ 전략 정보를 왜곡해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

 

3.3 교회에 미치는 영향

① 정보사회에서 제도 종교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 교회는 부적응 상태에 있는 인간들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킬 정도의 순발력을 발휘하기에 부적합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시도들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므로 이러한 변화를 따라잡는데 한계가 있다. 산업사회의 소품종 대량 생산 체제는 탈산업사회에서 구매자의 다양한 욕구의 표출에 따라 다품종 소량 생산의 양식을 따르는 형태로 바뀌고 있어 종교도 이런 흐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교회의 규모는 현대 사회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적정한 형태가 되어야 한다.

 

② 신자들 사이에는 신앙심을 유지하면서도 제도적인 종교는 반대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사람들은 두 극단에 이끌렸다. 이른바 신비주의적인 영적 경험을 중시하는 한 극단과 정통 신앙이라는 다른 한 극단이다. 이 가운데 신비주의, 열광주의적인 체험을 중시하는 신앙 유형이 불안한 시기에 더 확산되었다.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는 초대교회 또는 수도원 공동체로의 복귀와 같은 형태로도 나타날 것이다. 제도화된 종교는 사람들의 이런 불안을 위로하고 치료할 만큼 공동체적이거나 피난처가 되어줄 만한 탄력성을 가실 수 없기 때문이다. 북미에서 정통 종교가 주춤한 반면 소교파적이고 덜 중앙 집중화된 종교들은 성장하는 데서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있다.

 

③ 개인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여기서 도피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날 것이다. 정보 사회에는 지식있는 개인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러한 개인들은 제도화된 종교들의 의무를 기피할 것이다. 이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조직적인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고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종교에 끌리게 될 것이다. 개인의 시대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개인에게 부과되는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집단으로 도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공동체를 찾아갈 것이고 이런 형태의 공동체들이 증가할 것이다.

 

④ 미디어가 탈대중화, 탈획일화 경향을 띠면서 교회의 지식 독점 해체를 촉진할 것이다. 정보 사회는 미디어의 다양화로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고 특정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진다. 그래서 특정 관심사를 찾아 그에 맞는 자료를 제공하여 그 분야에 관심을 갖는 신자들에게 호소하도록 목회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게다가 미디어 시스템이 세계화되어 다른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다양한 유형의 신앙 양태를 보장하지 못하고 획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부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⑤ 여성을 천대하는 기존의 교회 구조와 교리적 경직성은 앞으로 이들 계층의 도전에 부딪힐 것이다.

 

⑥ 정보의 대중화를 통해 탈중앙 집중화를 촉진할 것이다. 전통적인 공동체의 해체를 통하여 정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끌어안을 가능성도 확대되며,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윤리를 제공하고 이를 지탱시켜 나갈 집단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⑦ 가정생활의 변화, 교육생활의 변화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관심사를 확대하고 전문화하는 방향을 나아갈 것이다. 또한 평신도 전문가 집단의 양적으로 증가하고 고학력화 추세를 가속화되어 목회자들도 전문적인 자질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⑧ 교회 행정에도 정보화가 필요해진다. 미디어 기술의 발전될수록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기 때문에 이들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질적인 변화가 있게 된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⑨ 탈산업사회 윤리로 변화될 것이다. 이러한 윤리는 자유와 정의, 문화의 다원성, 성차별․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이데올로기 극복, 평화, 생산성만이 아니라 환경과의 연대성, 교회일치에 대한 요구가 증대할 것이다.

 

⑩ 집단 내의 정보 격차와 국가간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정보의 분배 정의를 위해 교회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4. 목회자 윤리와 성서

 

정보사회의 역기능이 곧 새로운 윤리적 요구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윤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목회자 윤리의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윤리적 결단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윤리적 결단에는 항상 행동이 뛰따라야 하며 그 행동의 정당성 또한 윤리적 평가를 받아햐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윤리적 가치평가의 기준이란 그 윤리적 결단의 내용과 그 내용을 적용한 방법에 대한 평가이며, 성서와 현실 사회의 사건들을 그 내용으로 하여 윤리적인 결단을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대해 윤리적 판단을 함에 있어서 성서만을 유일한 근거로 채택하거나, 어떤 인위적 주장을 위해 성서의 본문을 선택적으로 인용하는 태도를 피해야 한다는 점은 유의해야 할 것이다. 성서는 증거 법전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만으로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던 본 회퍼 목사의 시도를 윤리적으로 악한 것이었다고 평가하기에 미흡한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사건에 대해 특정한 본문을 적용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성서 자체의 중요성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성서는 목회자들의 도덕적 평가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항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성서는 기독교 공동체의 문화에 도덕 정신을 불어 넣어주며, 인간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와 개념들을 제공한다. 즉, 성서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비전을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하여 현대 사회에 대해 도덕적 평가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서에 대한 연구와 깊은 통찰은 목회자의 판단을 도와주는 자료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의 확고한 증거로서 사용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윤리적 판단을 도와주는 성서 밖의 기준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대 사회에 일어나는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일반적인 윤리 원칙들이 있다. 이러한 순수한 합리적 정당성을 갖는 판단의 원칙들과 성서의 전통에 영향을 받은 판단의 원칙들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발전된 판단의 원칙들 사이에 변증법적인 관계가 있다.

 

 

5. 나오는 글

 

미래학자들은 정보화의 진행이 신자들의 종교성을 약화시키거나 감소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세계에서 정보화 진전 속도가 가장 빠른 미국에서 종교가 부흥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에서 나타난 종교 변화의 추세를 요약해 보면 보수적인 신앙심을 갖고 있는 전통 기독교파의 교세 증가, 대규모 교회보다는 소규모 근본주의 종파들의 성장, 비기독교 계통의 소종파 운동, 뉴에이지운동의 소종파들의 성장이 두드려졌다. 전통적인 신자들은 자녀교육의 필요성 때문에 교회로 다시 돌아오고, 전자 매체를 활용해 신자들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 교회들도 신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단적인 성향을 갖는 무수한 소종파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고학력, 고소득 전문 직종의 엘리트들이 뉴에이지 운동에 경도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는 ‘산업화 시대를 풍미하는 가치들을(세속주의, 민족주의, 마르크스주의 등등) 대신할 그 무엇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모색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무엇인지를 목회자들은 정확하고,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인간 내면에 가지고 있는 실존적 고민을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 목회자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내면적인 성찰을 하여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성서에 대한 깊은 묵상, 초대 교회 공동체와 중세 수도원에서 행하여지던 내적 성찰, 현대 심리학과 정신 분석에 대한 이해를 가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대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지겨보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정진해야 할 것이다. 신정통주의 신학자였던 칼 바르트가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한손에 성서를, 다른 한손에는 신문을 가지고 연구했다는 말은 현대 사회에서 목회자들이 깊이 음미해볼 말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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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큉, 󰡔세계 윤리 구상󰡕, 안명옥 역, 분도출판사, 1992.

 

* 이 논문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득한 옛날의 기억.